주유소 휘발유 가격이나 해외 직구 금액이 오르면 환율의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국경 너머에서 들여오는 공산품 원료와 식료품 원자재는 모두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 가계의 생활비 부담이 커지므로,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안정화 조치를 취한다. 아래 글에서는 외환보유액의 개념과 환율 안정화 원리를 쉽게 이해해 보자.
외환시장 개입의 방식: 구두개입과 직접개입
전국적인 배추 흉년으로 김장철 채소 가격이 폭등할 때, 관할 부처의 고위 관료가 긴급 브리핑을 열어 매점매석을 엄단하겠다고 공식 성명을 내면 거래 현장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량을 쥐고 가격을 더 올리려던 유통상들이 단속을 경계하며 호가를 낮추듯, 외환 거래판에서도 이처럼 엄격한 경고음을 먼저 울리는 심리전을 가동한다.
경제 부처와 중앙은행의 최고 책임자들이 현재의 가격 왜곡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쏠림 현상을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행위를 ‘구두 개입’이라고 일컫는다. 실제 비축 자산을 지출하지 않으면서도 정부가 즉시 칼을 빼들 수 있다는 의지를 각인시켜 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자금의 과열을 잠재우는 1차 방패 역할을 해낸다.
그렇다면 이런 엄포만으로 들끓는 거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을 때 당국은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할까? 이때는 지켜보기만 하는 태도를 끝내고 국가가 보유한 거대한 자금 보따리를 직접 시장 거래 창구에 쏟아붓는 ‘직접개입’, 즉 행동으로 보여준다.
환율이 비이성적으로 폭등할 때는 금고에 쟁여두었던 달러를 외환시장에 대규모로 매도하여 매수 열기를 식히고, 반대로 가격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 달러를 대량으로 사들여 균형선을 맞춘다. 이렇게 시장 원리에 내맡겨두었던 교환 비율에 국가 권력이 직접 참여자 자격으로 뛰어들어 가격을 억누르며 실력 행사를 하기도 한다.
정부 개입의 한계
만약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든다면, 시장 가격은 언제까지나 관청의 뜻대로 고분고분하게 움직여줄까? 가까운 일본 정부가 엔화의 끝없는 하락을 틀어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막대한 규모로 사들이며 버텼을 때, 환율은 단 5엔 안팎만 오르는 일시적 반응에 그치며 곧바로 다시 미끄러져 내렸다.
나라가 비축해 둔 비상금 통장에도 엄연한 한도가 존재할뿐더러, 특정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은 국제 금리 격차와 거시경제 체질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뿌리에서 비롯된다. 원인을 방치한 채 강제로 가격표만 손보려는 조치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아서 장기적인 흐름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한다.
나라가 비축해 둔 비상금 통장에도 엄연한 한도가 존재할뿐더러, 특정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은 국제 금리 격차와 거시 경제 체질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뿌리에서 비롯된다. 원인을 방치한 채 강제로 가격표만 손보려는 조치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아서 장기적인 흐름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한다.
결국 당국의 공격적인 외환 거래는 시장의 거대한 방향타를 완전히 바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급변동으로 인한 서민 경제의 충격을 덜어주는 일시적 완충 장치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의 적정 규모
환율에 발작이 일어났을 때 정부가 소방수 역할을 하며 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대외 결제 자금을 가리켜 ‘외환보유액’이라고 부른다. 가정으로 치면 예기치 못한 실직이나 큰 병환이 닥쳤을 때 살림이 파탄 나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둔 최후의 비상 통장과 동일한 맥락이다.
환율이 요동칠 때 시세를 진정시키는 방어벽이 되는 것은 물론, 국내 은행과 민간 기업들이 해외 거래처에 갚아야 할 외채를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 신용을 지탱해 주는 생명줄 역할을 해준다. 그렇다면 이 대외 자산은 무조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많이 쌓아두어야만 하는 걸까?
흥미롭게도 무역 대금의 기준선으로 통용되는 달러를 자국 조폐창에서 직접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은 굳이 외환 곳간을 크게 불려둘 필요가 없다. 채무 상환 요구나 금융 위기가 닥치더라도 자국 통화를 발행하여 대처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의 독점적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무역과 대외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개방형 통상 국가는 비상시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안전자산을 충분히 확보해 두어야만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과 불신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1997년의 뼈아픈 교훈
우리는 곳간의 비상 통장이 텅 비어버렸을 때 온 나라가 얼마나 참혹한 경제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체감한 역사적 상흔이 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즉시 동원할 수 있었던 가용 외환보유액은 39억 4천만 달러 선까지 바닥을 드러내며 사실상 국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외채를 상환할 외환이 고갈되면서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수많은 기업의 연쇄 도산과 대규모 실직이라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이 쓰라린 시련을 거름 삼아 대외 방파제를 쌓아 올린 대한민국은 세계 손에 꼽히는 거대한 규모의 비상금을 든든하게 채워 넣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의 거대한 비상금 보따리는 안방 장롱 깊숙한 곳에 현찰 다발로 묶어두는 방식으로 관리되는 걸까? 집에서도 목돈을 장롱 속에 그냥 넣어두면 도둑맞을 염려도 있고 이자도 한 푼 붙지 않듯, 나라 역시 위기 때 번개처럼 찾아 쓸 수 있으면서도 떼일 염려가 없는 초우량 안전 금고를 골라 맡겨둔다.
여기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전부 몰아 담았다가 바구니가 깨지면 전 재산을 날리게 되므로, 중심축이 되는 화폐 외에도 여러 선진국의 든든한 통화 주머니로 나누어 담아 혹시 모를 환율 풍파를 막아내는 묘수를 쓴다.
결국 외환당국의 기민한 시장 개입과 든든하게 채워진 외환보유액은 복잡한 금융 공학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외 거센 거시경제의 파도 속에서도 우리 집 식탁 물가의 무서운 폭등을 묵묵히 막아내고, 국가 부도라는 거대한 재난으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내는 가장 미더운 방파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