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토 최적이란? 완벽한 효율성이 반드시 공평한 것은 아닌 이유

동네의 한 작은 카페,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주말 근무를 앞두고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학생인 A는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이 잡혀 주말 아침 근무를 선호하고, 올빼미족인 취업준비생 B는 늦잠을 잘 수 있는 저녁 근무를 원한다. 그런데 매니저가 짜놓은 이번 주 시간표는 얄궂게도 A에게 저녁을, B에게 아침을 배정해 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 불만을 품은 채 억지로 출근할 뻔했지만, 다행히 출근 전 연락이 닿아 서로의 근무 시간을 통째로 맞바꾸기로 합의한다. A는 아침에 일하고 저녁 약속을 갈 수 있어서 좋고, B는 늦잠을 자고 저녁에 출근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교환했을 뿐인데, 두 사람 모두의 만족도가 크게 올라간 것이다. 누군가의 손해 없이 모두가 행복해진 이 완벽한 ‘윈윈(Win-Win)’의 순간, 경제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1 더하기 1이 3이 되는, 파레토 개선

앞선 카페의 예시처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최소한 한 사람 이상의 상황을 더 낫게 만드는 변화를 경제학에서는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흔히 경제 활동을 ‘누군가 이익을 보면 반드시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과 필요로 하는 자원이 다를 때, 자발적인 교환은 마법을 부린다.

A의 저녁 시간과 B의 아침 시간처럼, 내게는 가치가 덜한 것을 내어주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을 받아오는 교환이 일어날 때 사회 전체의 행복(후생) 총량은 눈에 띄게 커진다.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이것이 경제학이 그토록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선택과 교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최고 효율의 정점, 파레토 최적

그렇게 A와 B가 서로의 필요에 맞게 근무 시간을 수차례 바꾸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제 이 시간표가 우리 둘 모두에게 가장 완벽해”라고 합의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상태에서는 A의 일정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조정하려 들면, 필연적으로 B가 원치 않는 시간대에 억지로 출근해야 하는 손해를 입게 된다. 즉,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서는 그 누구의 상황도 더 이상 낫게 만들 수 없는 꽉 찬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자원이 낭비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된 이 정점의 상태를 바로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이라고 부른다. 파레토 최적에 도달했다는 것은 이미 효율성의 산꼭대기에 섰다는 뜻이다. 여기서 더 욕심을 내어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억지로 제도를 비틀거나 규칙을 추가하려 들면, 그것은 뱀을 다 그리고 나서 굳이 다리를 덧그려 그림을 망치는 ‘화사첨족(사족)’이 되고 만다. 완벽한 균형 상태에서는 멈출 줄 아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효율성은 ‘공평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파레토 최적 상태에 도달한 사회는 무조건 가장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일까? 안타깝게도 경제학의 차가운 잣대는 여기서 치명적인 딜레마를 마주한다. 만약 카페 사장이 A를 편애하여, A에게는 시급이 높고 편한 꿀 같은 주말 낮 근무 40시간을 몰아주고, B에게는 손님이 몰려 고된 저녁 근무 5시간만 배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B는 돈을 더 벌기 위해 A의 근무 시간을 떼어오고 싶어 하지만, A는 자신이 가진 40시간을 단 1시간도 양보할 마음이 없다. 이 상황에서 B의 근무 시간을 늘려주려면, 싫다는 A의 근무를 강제로 뺏어와야만 한다. 즉, 누군가(A)의 손해 없이는 다른 누군가(B)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으므로, 경제학적으로 이 극단적인 불평등의 시간표 역시 ‘파레토 최적’ 상태가 맞다.

파레토 최적은 자원이 얼마나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만을 측정할 뿐, 그 자원이 한 사람에게 독식되어 있는지 아니면 골고루 나뉘어 있는지와 같은 ‘공평성’의 가치에는 철저히 눈을 감는다. 결국 경제 공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짜 교훈은 분명하다.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파레토 개선을 통해 최고 효율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효율의 끝자락이 혹여나 소수만의 배를 불리는 불평등한 정점은 아닌지 늘 따뜻한 시선으로 살피고 견제하는 ‘공평함의 저울’이 우리 사회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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