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꽉 들어찬 만원 버스 안에서 지친 다리를 달래 줄 빈 좌석이 눈앞에 하나 났을 때를 떠올려 보게 된다. 누군가 잽싸게 그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그 자리를 노리던 다른 승객은 서서 가야 하는 피로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전체 좌석의 개수는 정해져 있기에 한 사람의 행운은 곧바로 다른 사람의 아쉬운 손실로 이어진다.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이 묘한 줄다리기의 규칙을 들여다보면, 세상이 왜 이토록 치열하게 남의 몫을 빼앗지 못해 안달인지 그 서글픈 배경을 단숨에 간파할 수 있게 된다.
닫힌 방 안의 의자 뺏기: 이익과 손실의 합이 0이 되는 규칙
어째서 어떤 장터에서는 내가 땀 흘려 얻어낸 성과가 다른 사람에게는 가혹한 눈물이 되어 돌아올까?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의자 뺏기 놀이를 할 때, 음악이 멈추면 모두가 필사적으로 빈 의자를 향해 몸을 던진다.
의자의 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서 한 아이가 자리를 꿰차고 앉으면, 다른 한 아이는 반드시 밖으로 밀려나 탈락의 쓴맛을 보아야 한다. 이처럼 누군가가 손에 쥔 이득과 다른 누군가가 잃어버린 손실을 전부 합쳐 보았을 때 정확히 영(0)으로 맞아떨어지는 판을 가리켜 ‘제로섬 게임’이라고 일컫는다.
전체 몫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꽁꽁 묶여 있는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대결이 바로 이 잔인한 규칙을 따른다. 결국 내가 깃발을 꽂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발을 걸어 넘어뜨려야만 하는 가혹한 승자독식의 숙명이 시작되는 셈이다.
늘어나지 않는 밥그릇: 뺏고 뺏기는 일상의 영토 전쟁
마을의 전체 인구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외딴섬에 미용실 두 곳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섬 주민들의 머리칼을 자르는 횟수와 수요는 한계가 뚜렷하므로, 손님의 총 숫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한쪽 미용실이 화려한 간판을 달고 손님을 대거 끌어모으면, 건너편 미용실은 하루아침에 손님이 뚝 끊겨 파리를 날리게 된다.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지지 않는 정체된 무대 위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성보다 남의 밥그릇을 낚아채 오는 약탈적 기술이 먼저 판을 치게 된다.
신규 고객이 들어오지 않으니 옆 가게의 단골을 가로채야만 내 점포가 생존할 수 있는 살벌한 이전투구가 펼쳐지는 것이다. 서로의 피를 말리며 뺏고 뺏기는 소모전 속에서, 구성원들은 일터를 가꾸는 보람 대신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불안감에 짓눌리게 된다.
닫힌 판을 깨뜨리고 파이 자체를 키워내는 길
만약 세상 모든 일이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면 인류의 삶은 얼마나 황량하고 피폐해질까? 다행히 우리가 살아가는 거대한 경제의 바다는 정해진 크기 안에만 갇혀 있는 좁은 어항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전에 없던 시장을 열거나, 서로의 장점을 맞바꾸어 양쪽 모두의 살림살이를 불려 주는 상생의 협력 역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배불리 먹기 위해 반드시 이웃의 밥상을 엎어야 한다는 좁은 제로섬의 틀에 갇히면 세상은 온통 적으로만 가득 찬 지옥이 되고 만다. 정해진 조각을 두고 흉기를 겨누는 대신, 오븐의 불을 지펴 케이크의 크기 자체를 키워내는 창의적인 발상이 절실한 까닭이다.
결국 제로섬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더 큰 판을 만들어가는 지혜를 배우는 출발점이다.